본문 바로가기
향토 역사 이야기

십승지(十勝地) 가야산 만수동(萬壽洞)

by 구름달가드시 2022. 9. 29.

오랜 세월 전란과 조정혼란,가뭄,홍수 등의 환란을 겪으면서 조선 중기이후 민간의 관심을 모았던 예언서(豫言書) 정감록은 국가 운명과 위기 발생시 안전한 피난처로 십승지를 말하고 있다. 외부에서 그 속을 들여다 보기도 접근 하기도 어려운 격리된 오지이면서도 식수와 식량 등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으로, 보은 속리산, 안동의 화산, 남원의 운봉, 전북 부안의 호안, 무주의 무풍,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 충남 계룡산, 합천의 가야산(만수동), 경북 풍기의 차암 금계촌이 그 곳이다.


가야산 만수동(萬壽洞)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전후로 회자되던 길지로 가야산 밑 남쪽에 둘레 200여리 가량의 萬壽洞이 있다는 민간의 기록이 있을 뿐,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구글 3D 지도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숭산지역이 당시 회자되던 길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고, 실제로 임진왜란 전후로 유입된 많은 성씨들의 숭산지역 문중 족보에도 이주경로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伽川)

 

           [사진설명 : 비계산 죄측 능선에서 가야산 정상부 조망]

뒤쪽 제일 높은 산이 가야산(1430m)이고 그 앞쪽 산봉우리가 매화산 제일봉(1010m), 그 앞쪽의 넓은 평지가 가야산 남쪽에 위치한 숭산(崇山)지역 사진이다. 숭산은 24개 자연부락이 가야산 남쪽 아래로 좌측은 남산 제일봉(1010m)과 매화산(954m)으로 내려오는 산 줄기, 우측으로는 단지봉(1029m), 우두산(이상봉1032m), 마장재, 비계산(1126m)으로 이어지는 고산준령으로 둘러 싸인 분지형 지세 안에 산재해 있다.  15세기 위대한 도학자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 두 선비가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나누던 소학당(小學堂)이 이 곳에 있기도 하다. 이 곳을 포함한 가야면 일대는 7년의 임진왜란 와중에도 적에게 침범 당하지 않은 유일한 고장이었다.  

 

    [사진설명 : 더내마을의 아침 풍경] 

매화산 제일봉(해발1010m)과 마주 보는 비계산 능선(정상해발1126m, 사진 우측의 높은 산능선) 사이에 만수동의 중심부인 더내마을을  사진 좌측 동산 밑에 숨겨둔 형국이다. 제일봉에서 매화산으로 내려오는 좌측 산줄기는 3갈래로 갈라지며 더내마을을 3겹으로 둘러 싸 있고, 제일봉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우측 산줄기는 외곽으로 비계산 큰산줄기, 안쪽으로 날기재에서 안심이로 내려 오는 작은 산줄기가 겹으로 보호 하고 있는 천혜의 지형 속에 있기 때문이다. (伽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