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스님3 인연의 끈을 따라 가 본 다솔사(多率寺) 집안 차실 한 켠에 오래된 죽절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효동 임환경 스님의 붓글씨로, 선친이 필자의 결혼식 청첩장을 스님께 보내자 글씨 한점을 접어서 우편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祝OOO氏OOO佳 偶緣成華燭之禮 百福俱集 九十六歲 曉東林幻鏡". 분명 한글로 된 청첩장을 보냈는데 필자와 아내의 한문명을 정확하게 표기한 내용의 글이어서 신기하게만 생각했었다. 당시 환경스님은 스님의 글을 받기 위해 외지서 온 객들이 줄을 서있느니 뮈니 하면서 고향에서도 '당대의 명필'로 회자되었던 분이다. 13세에 입산하여 16세 전후에 이미 신필(神筆)로 명성을 얻었다 하며, 종단정화(비구,대처분쟁)로 해인사를 나와 속가와 대구 등지로 은거하시면서 '필봉의 설법'을 계속하셨는데 한 번도 뵌 적은 없었다. 그러다 1982년 .. 2022. 10. 6. 논산 법계사 환경스님 필적 서해안 여행 길에 스님들의 노후를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찰이 있다하여 논산 법계사를 찾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환경스님의 필적을 만날줄이야 ! 1993년도에 부지매입 후 23년에 걸쳐 불사 후 2016년도에 완공되었다는 논산시 양촌면의 법계사(法界寺) 대웅전 편액에 환경(幻鏡)스님의 필적이 담겨 있었다. 세수(世壽.나이)로 서작(書作)년도를 표현하는 스님의 필적을 대하면서 장엄하면서도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임환경 스님은 1983년 97수로 타계하였으니 불사를 시작하기 오래전에 받아둔 필적이 아닌가 싶다. (伽川) 2022. 10. 5. 환경스님은 누구인가? 임환경(林幻鏡 1887~1983)스님의 초명은 재수(在修)요, 호는 환경당(幻鏡堂)이다. 1887년 경남 합천군 가야면 마장동에서 출생하여 8세에 李東光(松齌)으로부터 四書를 사사(師事)받고, 13세 되던 해 입산하여 가야산 백련암에서 연응(蓮應)스님을 스승으로 佛家에 몸을 담았는데, 16세 전후에 이미 신동(神童)으로 신필(神筆)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친일승을 앞세운 일제의 침탈에 맞선 해인사 수호와 독립운동에 앞장 섰고, 해방직후 서울 중앙포교사 재임시절엔 김법린 총무원장과 효당 최범술(曉堂 崔凡述) 총무부장과 함께 많은 신도와 불자에게 불교문학사상을 일깨워 전수하기 위해 불교대학인 동국대학을 구성하였고, 해인사를 최초로 총림(叢林)으로 구성하여 “해인총림(海印叢林)” 현판글씨는.. 2022. 9. 3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