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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7

청원도예(靑園陶藝) 이야기 청원도예 금산(錦山)선생은 필자의 집안 어른이시다. 위로 황산문중의 종손인 형님이 계셨으나 출가하여 임환경 스님의 해인사 주지 시절 재무스님 소임을 받았고, 해방 후는 비구대처 갈등으로 산문을 나와 직선제 였던 가야면장을 거쳐 고령 만대산에 개산(開山)하여 규월사 주지로 은거하고 계셨다. 그래서 출가한 형님을 대신하여 선생이 문중 벌초나 묘제 등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셨는데, 선친이 작고 하신 후 내가 문중일에 참여하게 되어 선생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되었다. 선생의 본업은 도공이었는데 일평생을 도자기에 오직 달마대사도만 그려 넣으셨다고 한다. 황산문중 벌초일이 되면 후손들이 모두 선생의 집으로 모였다. 넓지 않은 비탈 집터지만 전통가마와 작업실,전시실을 갖추고 있었는데 곳곳에  벌초일꾼 수십명과 식사를 .. 2024. 7. 15.
목탁장인 성공(成空) 김종성 경남 거창군 가북면 하개금 마을 쪽으로 가을여행을 갔다가 운 좋게 목탁장인 김종성씨를 만날 수 있었다. 목탁장수 였던 선친(김사용)에 이어 목탁장인 김종성씨가 대를 이었고 둘째 아들이 전수를 받고 있다 한다. 물려 받은 선친의 100년된 살구나무 뿌리를 저장해 둔 창고로 부터 시작되는 목탁작업은 전수받은 비법의 공정이 있다고 한다. 작업대상 뿌리로 선택하면 땅속에 3년 동안 묻어 두었다가 소금물에 적셔 가마솥에 하루 종일 푹 쪄내고 석달을 말린 후에야 비로소 다듬는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인근에 있는 해인사를 찾아, 성철스님에게 목탁을 내어 놓았다가 깨달음의 소리가 나지 않으면 목탁이 아니라는 질책을 받았고 오랜 세월 지난 후에야 성공(成空)이란 법명을 받았다고 한다. 목탁의 생명은‘소리’ .. 2022. 10. 21.
화엄사 홍매화 탐매(探梅) 세번째 남도여행길에 구례 화엄사로 탐매(探梅) 길을 잡았다. 너무 먼 길이라 이 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어 조금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 해마다 작가들의 사진으로 봄소식을 알게 해 주던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화는 절집 건물과 잘 어우러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수령이 약350년 정도라는데 이끼로 가득한 나무 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에서 만개한 진홍색빛 매향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도 많은 탐매(探梅)객들이 이 절묘한 봄소식을 담기 위해 홍매화를 둘러싸고 있고 각황전 뒷편 언덕에는 사진 작가들이 셔터 누를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2021.03 伽川) 2022. 10. 13.
인연의 끈을 따라 가 본 다솔사(多率寺) 집안 차실 한 켠에 오래된 죽절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효동 임환경 스님의 붓글씨로, 선친이 필자의 결혼식 청첩장을 스님께 보내자 글씨 한점을 접어서 우편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祝OOO氏OOO佳 偶緣成華燭之禮 百福俱集 九十六歲 曉東林幻鏡". 분명 한글로 된 청첩장을 보냈는데 필자와 아내의 한문명을 정확하게 표기한 내용의 글이어서 신기하게만 생각했었다. 당시 환경스님은 스님의 글을 받기 위해 외지서 온 객들이 줄을 서있느니 뮈니 하면서 고향에서도 '당대의 명필'로 회자되었던 분이다. 13세에 입산하여 16세 전후에 이미 신필(神筆)로 명성을 얻었다 하며, 종단정화(비구,대처분쟁)로 해인사를 나와 속가와 대구 등지로 은거하시면서 '필봉의 설법'을 계속하셨는데 한 번도 뵌 적은 없었다. 그러다 1982년 .. 2022.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