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 속 여행

겨울 이야기

by 구름달가드시 2022. 10. 5.

어릴 적 겨울은 길고 너무 추웠었다. 물론 겨울 옷이라야 변변찮았고 잘하면 나이롱 양말에 검정 고무신이었으니 더 했을 것이다. 발이 얼고 손등이 트는 것이 예사였지만 아이들을 집안에 묶어 놓지는 못했다.

 

계단식 논두렁을 훌쩍훌쩍 뛰어 다니면서 '자치기'를 즐겼고, 연을 날리고, 짚으로 새끼를 꼬아 만든 짚 공을 차면서 놀았다. 조금 조용하게 논다면 동내 마당에서 병뚜껑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누가 더 큰 면적을 차지하는지 겨루는 '땅따먹기',구슬치기,딱지치기,썰매타기,팽이 돌리기,재기 차기 정도였다. 구슬이야 돈을 주고 사야 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재료를 구해서 손수 만들어서 놀았다.

 

저녁이면 어른들은 동네 사랑방으로 모여 호롱불 아래 밤 늦도록 새끼를 꼬며 한담을 나누었고, 아이들도 사랑채가 있는 친구 집으로 모여 들었다. 따듯한 구둘막 자리를 차지하려고 밀치기도 했었고, 방안에 들여 놓은 자루의 생 고구마를 깎아 먹으면서 놀이로 얘기로 초저녁 밤을 메워 나갔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조그만 방이다 보니 방귀라도 뀌게 되면 금새 독가스 실이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불꽃놀이이다. 방귀가 나올라 치면 얼른 겉 바지를 내리고 내복바람으로 엉덩이를 호롱불 가까이 댄다. 모든 아이들이 숨죽여 기다린다. 발사하면 푸르고 붉은 불꽃이 순간 ''하고 피어 오른다. 환호성이 이어진다. 냄새가 없어짐은 물론이다. 누구의 불꽃이 가장 크고 찬란했는가 그것이 화제였다.

 

설이 가까워 지면 어김없이 '뻥튀기'장수가 마을을 찾아와 쌀,강냉이, 썰어서 말린 떡가래를 틔운다. 동내 일을 다 보는 데는 3~4일이 걸리는데, 이 때의 아이들 놀이터는 이곳이 된다. '' 소리에 귀를 막고 겁을 먹기도 하지만 모닥불이 있고 튀어나온 '튀밥'들을 주워 먹을 수도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일년에 새 옷을 입어 볼 수 있는 딱 2번의 기회 중 하나이니 기다림과 설레임도 있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오후부터 세배를 다니기 시작한다. 연세 많은 동내 노인들을 비롯해서 다른 마을 친인척 어른 댁까지 먼 길 마다 않고 다녔다. 선친을 따라 20리 눈길을 걸어 집안 어른 세배를 가기도 했었다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후손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은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문중 일로 간혹 만나 인사를 나누어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가 어렵고 서로 조심스럽기만 하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이 또 바빠지고 아이들은 볼거리가 많아져 즐겁다. 마을 어른들 중 상기(喪期)에 있지 않은 사람을 제관으로 뽑아 당산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앞에 제단을 만들고 보름날 자시(子時)에 당산제(堂山祭)를 지냈다. 아침 오곡밥에 복 조리도 뻬 놓을 수 없다. 그리고 농악대가 구성되어 집집이 돌면서 지신밟기를 행한다. 꽹과리가 주도하는 리듬으로 북,장구,징 소리가 온 마을을 뒤덮으며, 어깨춤에 포수도 나오고, 상모 돌리기도 나온다. 년 중 최대 축제의 날인 것이다.

 

상품이라야 냄비 하나 삽 한 자루 정도지만 윷놀이 판이 벌어지면 응원소리에 마을이 떠나 갈듯 하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달맞이로 다시 마을은 술렁이게 된다. 마을 동쪽 작은 동산에 달집 그슬기준비를 해 두고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옅은 구름이라도 깔리면 해질녘에 뜨는 달이라 떠올라 있어도 식별이 어렵다. 주로 노총각들이 맨 먼저 달을 보면 그 해에 장가갈 수 있다며 요란을 떨었다.

 

그리고.....

개울가 얼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면 또 봄날을 기다렸다. (伽川)

 

소나무의 겨울나기

 

'추억 속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새끼줄 꼬기  (0) 2022.10.06
가설극장  (0) 2022.10.06
산골 "콩쿨대회"(노래자랑)  (0) 2022.10.06
유년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 그리고 더내 향우회  (1) 2022.10.05
관솔불  (0)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