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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절에 대한 기억

by 구름달가드시 2026. 9. 21.

건강이 좋으셨을 때 매년 사월초파일이면 어머님은 큰어머님 그리고 친구분들과 함께 청량사를 하루 전날에 가셨다. 온 가족의 이름을 기록한 연등을 달고 밤을 세우다 싶이 발원기도를 하셨다. 어린 아이들도 달아 놓은 연등 줄 사이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할머니를 따라 무작정 절을 올리기도 했었다.

지금은 '청량사'라 불리우지만 어릴 때 고향에서 불리운 절 이름은 '남산절'이었다. 매화산 옆의 또 다른 봉우리를 남산이라 불러서 연유한 이름인듯 싶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남산절과 관련해서는 대략 두 가지의 유년시절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남산 제일봉' 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차례 소를 먹이러 사기평년을 가거나 했을 때 친구들과 함께 능선을 타고 남산 제일봉을 올랐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은 철 계단을 설치하거나 해서 손쉽게 오를 수가 있었지만 그 때는 거의 암벽등산이었다. 어린 나이에 사투를 벌려 수직등반으로 좁은 면적의 정상에 서면, 만화책에서 본 산신령이 사는 곳에 내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위험한 등반이었다.

또 하나는 필자 집안과의 인연이다. 6.25전쟁 시절에 저희 집안의 한 분이 남산절의 주지로 계셨다고 한다. 인민군 병력이 한동안 남산절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절에서 식사를 해결하였는데 수복 이후 국군에 의해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가가 힘이 없어 백성을 적군의 총칼 아래 방치해 놓고는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전으로 도망친 정부군이 적군의 위협아래 살아남기 위해 행한 최소한의 행위를 수복 후에 이적행위로 확대 포장하여 재판 절차도 없이 반공의 이름으로 무단 보복한 것과 같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절통한 비극이 아니겠는가? 전쟁 후 연계 가족들이 연좌제로 고생했다는 얘기가 없었던 걸 보면, 다행이 곧 기록이 바로 잡혔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불사를 거듭하여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담했던 '남산절'의 기억과 할머니와 함께 했던 어릴 적 아이들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2006 伽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