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곳

인연의 끈을 따라 가 본 다솔사(多率寺)

구름달가드시 2022. 10. 6. 11:13

집안 차실 한 켠에 오래된 죽절 액자가 하나 걸려있다. 효동 임환경 스님의 붓글씨로, 선친이 필자의 결혼식 청첩장을 스님께 보내자 글씨 한점을 접어서 우편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OOOOOO佳 偶緣成華燭之禮 百福俱集 九十六歲 曉東林幻鏡". 분명 한글로 된 청첩장을 보냈는데  필자와 아내의 한문명을 정확하게 표기한 내용의 글이어서 신기하게만 생각했었다.

 

당시 환경스님은 스님의 글을 받기 위해 외지서 온 객들이 줄을 서있느니 뮈니 하면서 고향에서도 '당대의 명필'로 회자되었던 분이다. 13세에 입산하여 16세 전후에 이미 신필(神筆)로 명성을 얻었다 하며, 종단정화(비구,대처분쟁)로 해인사를 나와 속가와 대구 등지로 은거하시면서 '필봉의 설법'을 계속하셨는데  한 번도 뵌 적은 없었다. 그러다 1982년 환경스님 일생의 행적과 묵적을 정리하고 있던 제자 홍강 이봉호(弘岡 李奉昊)님을 뵙게 되었고 스님의 서법세계와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아내도 다도(茶道)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효동 임환경(曉東 林幻鏡) 스님의 제자이시기도한 효당 최범술(曉堂 崔凡述) 스님도 재인식하게 되었다. 효당 스님이 1960년 부터 79세로 입적하기까지 다솔사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법당 뒤켠에 차나무를 가꾸고 승속의 제자들에게 다도다론(茶道茶論)을 전파하심으로 현대 한국다도의 시원지가 된 다솔사를 이런 인연의 끈을 가지고 오늘에야 아내와 함께 가보게 된 것이다.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산중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주차장에 이르니 차와 다기용품을 판매하는 '보제루'가 눈에 띄었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니 법당건물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요란한 단청도 없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적멸보궁과 건물 뒤편 차밭이 여느 사찰과는 좀 다른 풍경이었다. 차 밭은 무성한 잡초와 함께 있었는데 그다지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은 듯한 그야말로 야생차 밭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제시대 불교계 항일운동의 거점이었고 김동리의 대표작 '등신불'이 태동한 곳, 그리고 다사(茶寺)로서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이들이 체취가 곳곳에 베어 있는 공간이건만 종단분쟁으로 맥이 끊긴 느낌이 들어 우리 부부는 무심한 나그네처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이 곳을 다녀왔다.  (2007.09 伽川)

 

다솔사. 적멸보궁 건물 뒤쪽이 차밭이다

 

다솔사 차밭